2022.12.31

Geronimo.

도망쳐나왔다.
탈출이 될지 추락이 될지 좀처럼 알 수 없으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뛰어내린 듯 싶었다.
숨이 막혀 도망쳐 나왔는데 막상 그 끝에 아무것도 없으면 어떡해.

그래도 이때가 아니면 언제 도망칠 수 있을까 싶었다.
숨통을 죄는 듯한 질문과 고민거리, 인간관계에서 한번이라도 벗어나보자.
행복해지는 것에 있어 지금보다도 좋은 때는 없겠지.
그래서 반드시 올해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 간에는 뭔가 해보겠다 발버둥 칠수록 불행해졌으니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되지 않겠냐는 기대를 막연하게 걸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나 자신을 갉아먹으며 행복과 거리감을 느낀다.
못난구석을 돌아보기 싫어 부던히도 생각을 덜어내지만,
생각을 비운 자리엔 다시 내 못난 구석들이 쏜살같이 차오른다.

이전보다 조금 더 얕게 우울하고 조금 더 빨리 제 궤도를 찾아가지만
안고 있던 질문과 고민들은 작년에서 뛰어내린 내 발목에 엉겨 붙어 여전히 뒤따라 온다.
끊어내고 싶었던 인간관계는 사람만 바뀌어 아직도 같은 자리를 맴돈다.

점처럼 조그맣던 착륙점은 점점 커지더니 어느덧 눈 앞을 아득히 집어삼켰고
정말이지 이제는 다음 해에 두 발을 내딛고 일어서야 할 차례지만
여전히 나는 올 한해가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알지 못한다.

아무리 풀어도 풀리지 않아 덮어두면 행복할거라 생각했는데
또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받아들이고 살면 나을까 생각했는데
불행을 미뤄뒀을 뿐 행복해지는 법은 올해도 찾지 못했다.

때때로 왜 이렇게 어렵게 생각하며 살아가나 싶을 때가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쉽게 행복해 하는게 내 성격의 장점이라는데
일상은 그리 될지언정 일생은 그리 보기가 참 어렵다.

아무튼 간에 애써 한가지 위안거리를 찾아보자면
어쨌든 멀쩡히 살아 숨쉬며 올해의 끝에 도착하기는 했다는 것.

 

'이제 정말 내년이야. 어떻게든 또 살아남아 봐야지.'

 

2022년 12월 31일, 유성의 작은 내 방에서

이따금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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