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글을 하나 걸어두었는데, 혹시 읽어보셨을까요?
일기를 적어두겠다 선언하고선 고작 알쏭달쏭한 산문만 하나 던진 것 같아서 웃기기도 하고 그래요.
나름 인문계열을 전공했지만서도 글 주변이라는 건 원체 부족하다보니 미완으로 남겨둔 일기만 몇 장인지 셀 수 없어요ㅋㅋ
시작은 그럴싸하다가도 마무리 지어지지 않는 게, 딱 늘상 마주하던 내 모습 같아서 익숙하고 또 나쁘지 않아요(좋을건또 없죠 사실,,,).
문득 궁금해지네요. 시작은 그럴싸했는데 미처 마무리 짓지 못했던 것들이 또 지나간 일기 말고 뭐가 있었는지 말이에요.
아 그래, 고등학교 때 썼던 단편소설이 하나 있어요.
소년병을 주인공으로 전쟁 가진 비극성과 모순 등의 이야기를 담아보겠다며 야심차게 과제로 적어냈던 게 있죠.
나름 그럴싸한 플롯이며 은유며... 중반부까지 요모조모 잘 풀어가다가 결국 늘 그랬듯 엉성하게 마무리 짓고 말았어요.
내용뿐이던가요ㅎ 제목도 마땅한 생각을 떠올리지 못해, 단지 극의 배경일 뿐인 설산을 이름으로 써올렸죠.
나중에 더 좋은 이름이 떠오를 때 제목을 바꿔 걸겠다 다짐하고선, 7년째 소설의 이름은 ’설산‘에서 멈춰있네요.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방 책장에 꽂혀있는 수많은 문제집들이 있어요.
언제나 굳건한 마음으로 끝까지 풀어보겠다 되뇌이고는, 결국 마지막 단원에 근사하여서는 손을 대 본 기억이 없어요.
이런 일들이 비단 초등학교 시험에만 있었겠나요.
중학교 때에도, 고등학교 때에도. 솔직하게는 군 휴학 기간을 의미있게 보내보겠다며 사두었던 전공 서적들에 이르기까지 단 하나도 변한 것이 없죠.
사랑할 일이 생겼을 때에도 그랬다는 게 웃겨요.
분명 처음엔 온 맘 다해서 힘껏 사랑해줘야지 다짐했거든요. 항상 다짐했고, 또 항상 자신있었어요.
그렇지만 오래가지 않아 마음이 금세 흐지부지 무너져 내리더라고요.
그래서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것에 있어 점차 막연하게 무서움이 커지는 것 같아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무너져 버릴텐데 어떡해.
애시당초 시작하지도 않으면 무너졌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을텐데,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주어진 시간이 더 많았다면, 그래서 내가 문제를 더 풀어볼 수 있고 글을 마무리할 수 있고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 때까지기다려줄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요?
사실은 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풀고, 글을 쓰고, 감정을 다잡을 마음이 생겨날 준비조차 되지 않은 채 무작정 시작했던내 잘못은 아니었을까요?
성공해본적이 있어야 잘못을 알텐데, 성공해 본 적 없으니 무작정 모든 단계에 걸쳐서 의심해볼 수 밖에요.
이제 슬슬 갈무리를 지어야 할텐데 결국 또 마지막에서 막히네요.
그냥 솔직하게 대충 던져보고 또 마무리라고 우겨볼 심산이에요.
어차피 아무리 머리를 싸매도 마음에 드는 후반부에 도달하지 못할 테니까요.
시작하기가 너무 무서워요.
또 실패할 것 같으니까, 아니 또 실패할거니까.
나만 상관있는 일은 실패가 온전히 내 몫이 되어 쓰리고(이를테면 작문, 과제 따위의 것), 사랑처럼 다른 또 누군가와 관계되어야 하는 일의 실패는 누군가에게 상처만 남기는 것 같아 아파요.
결과적으로 행복한 사람이었으면 하는데...
늘 이런 식의 마무리 밖에 내지 못하는 내가 결과적으로 행복해지길 바라는 건 과욕이겠죠?
완성하고 싶었던 단편소설 하나, 또 세 달이 지나 복학하면 다시 시작해야 할 공부거리들.
그리고 지금에 알 수는 없으나 앞으로 내가 마주할 또 사랑할 사람들.
그런 것에 있어 잘 마무리 지을 수 있겠다고...
잘 마무리 지을 법 하다는 그런 자신감을 갖고 싶어요.
아 이제 더는 진짜로 울기 싫단 말이죠.
2022년 11월 07일, 험프리스에서.
이따금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