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0

한 주하고도, 한 주, 또 한 주를 지나 어느덧 짙은 겨울을 향해가고 있으나, 모니터 너머의 벽달력은 아직도 시월 자락에 멈추어 서있다. 본래 벽에 못을 박아 걸어두어야 하는 달력이지만 세 들어 사는 방에 고작 날짜 하나 확인하겠다며 망치질을 결심하는 것은 여간 용기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떼어내기는 쉽고 흔적도 남지 않을 가벼운 것이되 달력 정도는 붙잡아 둘 수 있을 법한 정말이지 딱 적당한 끈적임의 테이프를 고르고 골라 억지로 달력을 벽에 붙여두어 쓴 것이 만으로 10개월 째이다. 그 말은 곧 달이 바뀔 때마다 벽으로부터 떼어졌다 다시 붙여지기를 이미 열 번 가량 반복한 달력이라는 것이다. 사실 열 번을 훌쩍 뛰어넘어 떼어졌다 붙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해보면 퍽 그렇다. 신정 즈음 달력을 사왔을 적에 완전히 수평이 되게끔 해보겠다며 테이프를 붙였다 다시 떼내기를 반복했던 것만 해도 서너번을 넘긴다. 유난히 습윤했던 이번 여름엔 벽지마저 땀에 젖어 각에 맞춰 애써 붙여둔 달력이 미끄러져 나가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회사를 다녀온 늦은 저녁에서야 떨어져나가 책상 위로 엎어진 달력을 발견하고선 이를 다시 벽에 붙여둔 기억도 몇 번이다. 그러나 더는 이렇게 공들여가며 달력을 벽에서 떼어내어 지난 달을 벗겨낸 뒤 다시 각에 맞춰 붙일 수 없다. 이 수고로운 작업을 더는 달마다 감내하기 귀찮아진 것이다. 붙였을 적엔 마침내 완벽한 자리를 찾은 것처럼 만족했을지는 몰라도, 며칠이 흘러 새로이 흘깃 바라보았을 때엔 그다지 흡족스럽지 않았다. 그러한 탓에 잘 붙여보겠다는 노력의 크기는 점점 줄어들어 달력은 매번 조금씩이라도 더 삐뚤게 붙여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제대로 붙여보겠다는 생각 자체를 관두어 버렸다. 그 사이 단단한 하드보드지 재질의 달력 뒷판과 몇 달 채 남지 않은 달력의 내지들은 서로 붙어있기 위한 아주 최소한의 접착력만을 남긴 채 간신히 아주 간신히 매달려 있는 꼴이 되었다. 몇 번이고 떼어졌다 붙여지기가 반복된 달력이니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러한 탓에 이제 다음달로 넘겨낸 달력이 성히 벽에 붙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란 어려운 기대가 되었다. 까슬한 스웨터에 두툼한 패딩 점퍼를 겹겹이 껴입는 날이 찾아왔고, 또 늦은 밤 추위에 새삼 놀라며 깨어 보일러를 트는 날이 찾아왔어도 끝끝내 방 한 켠의 계절은 여전히 가을에 멈추어 있음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몸에 열이 많은 나는 보일러를 틀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번씩 발 끝이 시려오는 기분은 겨울이 찾아왔음을 말한다. 달력이 시월 가을 끝자락에 멈추어 있다 한들 겨울은 기어이 방 안까지 불쑥 밀려 들어온다. 물론 겨울이 오기를 바라지 않은 적도 없거니와 오기를 두려워한 적은 더더군다나 없다. 그저 나는 달력을 떼어 넘겨 다시 붙이는 것에 자신이 없는 것이다. 근래에 애써 붙여본 적은 없을지 언정, 벽에서 떨어진 달력에 몇 번이고 다시 테이프를 가져다 대었던 것은 지난 겨울 끝자락과 또 입춘 즈음하여 달력을 애써가며 반듯하게 붙여보려던 나의 마음을 분명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언제라도 제각기 떨어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이 달력을 감히 이번 달로 넘겨보지 못하는 것은 나태한 탓도 있으나 놓아줄 자신이 없음에 더욱 가깝다. 여전히 시월에 멈춰서 있는 달력은 어쩌면 더는 달력이라 부르지 못할수도 있다. 날짜를 알려주지 못하는 이 인쇄물이 책상 한켠에 가득히 꽂혀있는 이면지들과 어떤점에서 다른지 설명하기란 더욱이나 어렵다. 그럼에도 나는 이듬해 달력을 붙이기 전까지는 숫자 10이 큼지막히 적힌 이 종잇장을 붙여두고 있을 것만 같다. 더는 아무것도 아닌 종이 뭉치를 구태여 붙여두려는 이유를 누군가 묻는다면, 그러다 완전히 떨어지게 되었을 때 느껴질 허전함 때문이라 대답하겠다. 어쩌면 추억과 꼭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 좀처럼 애썼지만 어느 순간 놓아버린, 또 그렇게 허물어졌음에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선 소중함을 느끼는 그런 것들 말이다. 우스운 일이다.

 

2024년 11월 20일, 종암의 벽과 달력 앞에서

이따금 생각

'이따금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240115  (0) 2024.01.15
230118  (1) 2023.01.18
221231  (2) 2022.12.31
221107  (0) 2022.11.08
221105  (2) 2022.11.06